"끄응.."


인퀴지터는 익숙한 통증을 느끼며 몸을 비틀어 일으켜세웠다. 

미묘하게 귀에 거슬리는 소리. 비록 눈꺼풀로 가려진 시야였지만 알수있을정도로 

왼손가락들 속속들이 밝은 반딧불이 궁둥이 같은 색으로 튀겨지고있었다. 

이대로 눈을 비비면 장님이 될테지, 분명 언젠가 그렇게 멍청한 사고를 터트릴거야.

아직 헛생각으로 취해 머리속을 떠날생각이 없는 잠을 밀어내며 겨우 실눈을뜨고 

어둠속에서 고개를 돌려 곤히 잠든 그를 바라보다가 행여 깨우기라도 할까봐. 하지만,

...허튼생각을 접고 촛대를 잡았다. 만일 꿈이라도 꾸고 있으면 무슨 실례인가.


차가운 돌바닥에 약간의 굴곡진 마감이 발바닥에 느껴져 바르르 떨리는 감각을 딛고서

완전히 잠기운에서 벗어난 인퀴지터는 앵커로 인해 타닥거리며 불씨를 머금은 엄지와 검지로 

심지를 비벼켰으나 작은 수고에도 불구하고 창밖에선 막 구름이 지나간뒤 달빛이 틀안으로

서서히 밀려들어와 찬장의 진통제와 갑옷거치대를 비추었다. 

다행스럽게도 불똥이 깃든 왼팔또한 열심히 흔들어댄 덕분인지 잠잠해져 가고있으니 

남은건 이 욱신대는 통증뿐이렸다. 

마치 화살조각이라도 팔뚝에 박힌듯 날이갈수록 위치를 바꿔가며 쑤시기를 점점 키워가는 것이..

코리피우스의 목을 자르기전에 카르타 은퇴선언을 하는게 좋지않을까.


.. 잠이 아직 덜 깼군. 


인퀴지터는 눈물이 찔끔 나올정도로 역한 약물을 들이키곤 진한 혼합물냄새를 씻어내기위해 

술병을 잡았다가 조세핀의 눈동자를 떠올리곤 도로 내려놓았다. 

물독이 비어있으니 어쩔수 있었겠냐는변명 따위는 일체 불가하니 어쩔 수 없지않은가. 

어설프게 걸려있던 담요를 외투마냥 걸치고 알콜이 없는 음료를 찾아 성채를 탐사하기로 한다.


"인퀴지터?"


아닌밤중에 스카이홀드의 대전당을 오가는 불빛이 야간순찰자들의 것과 다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엘프의 붓질을 기어이 방해한것은 바닥을 굴러 솔라스의 방에 들어와 멈춘 과일 한덩어리 탓이었다.

물론 뒤이어 어슬렁대는 걸음으로 들어온 범인은 언제 그랬냐는듯 바닥을 구르다 멈춘 벌긋한것을 

여유롭게 낚아채듯 잡아내곤 천장에 가까운 위치에 앉아있는 엘프에게 능청스럽게 인사를 올렸다.


"솔라스, 밤이 깊었는데 잠드는 법이 없군요."


"당신처럼 나도 주어진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있습니다."


"정말로 이 방 전체를 빼곡하게 채울 생각인 겁니까?"


"오히려 코리피우스와 재회하기전에 여백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낮은위치에서 들리는 와삭- 소리가 한바퀴 발자국들과 섞이는동안 엘프의 무릎에 올라가있는 

안료가루들이 개어져 자박자박 그가 원하는 색으로 섞여져갔다. 이런, 뭔가 조금 부족하군.


"인퀴지터, 테이블에 있는 안료주머니중 노란칠이 되어있는것을 올려줄 수 있습니까?"


"구경값으로 부려먹을 생각이라면 당연히 해드려야죠..그런데 음. 노란색이 한두개가 아닌걸요."


"거기 중앙.. 아닙니다, 내려가죠."


"번거롭지 말고 이중에 어느것인지 짚어주시죠."


"어차피 내려 왔어야했습니다, 전체그림을 보아야 완성을 가늠할 수 있지 않습니까."


사다리에서 내려온 엘프의 볼에 동그랗게 튄 자국을 가리키며 인퀴지터는 깨끗한 면보를 건넸다.


"큰규모의 작업에선 깔끔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법이죠."


"솔라스, 당신은 내가 아는 벽화를 그리는 자들 가운데 가장 깨끗한 작업자니까 겸손은 접으세요."


작업대에 가리워진 미완성 벽화 일부는 푸른창틀에 황금빛 격자 노란 후광이 형태를 갖추고있었다.


"겨울궁전이군요."


"아직은 아닙니다."


"별로 이 벽화에 들어갈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판단이 페럴던과 올레이를 안정시켰다면 대단한 일이지요."


"저는 좀더 정치적인 관점에서.."


"이런, 저는 보다 영웅적인 안드라스테의 전령을 테마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만하세요 솔라스, 되먹지도 못한 겸손은 접도록하죠."


서로 띈 실없는 미소를 지나쳐 검고 솟아오른 산맥 정중앙 위압적인 코리피어스의 형상아래 

불타오르는 헤이븐으로 시선이 꽃히자 인퀴지터는 조용히 그날을 주시하였다.


"..당신은 그럴만한 위치에 서서, 스스로를 증명했습니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그럴이유는 없었는데."


문득 왼손이 저려와 자신도 모르게 팔을 주물대는것이 마치 답이라도 되는 양,

인퀴지터는 하려던 말을 혀안으로 말아넣고 대신 담요자락을 끌어 안았다.  

그런 그의 뒤에서 엘프 마법사는 양촛불의 따뜻한 온기로 데워진 물에 마법을 걸었다.

어린 잎을 정성스레 말려낸 마법은 곧 황금색으로 퍼져 옅은 향기를 피워내는 잔으로 완성되었고

솔라스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가슴께 아래에서 상념에 잡혀있는 드워프에게 다가가 잔을 건낸다.


"제것도 있는겁니까?"


인퀴지터의 의심스러운 농담에 그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연쇄적으로 그 웃음이 옮아 건네받은 찻물이 살짝 넘칠정도로 서로 웃고말았지만, 

사실 알고있다. 웃을일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조금 뜨거운듯한 차를 호륵- 소리내어 마시고만 인퀴지터가 눈치를 살피자 

그는 찻잔 손잡이에 묻은 안료범벅이된 손가락을 살짝 틀어보였다. 


"..잘 우려낸 차로군요."


"이인분을 우려내는 일은 드물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은 이게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내게 다시 고요한 작업환경을 약속하는 겁니까?"


"다음엔 뭐라도 들고 와야겠군요."


"당신이라면, 양손이 비어있어도 괜찮습니다. 인퀴지터."


"대접받은 카르타 사람이 입을 닦고 일어나면 가장먼저 하는 말이랍니다."


"그리폰 뼛가루를 넣은 안료가 품질이 좋다죠."


"정말입니까?"


반쯤 녹아내린 양초를 들고 아치문을 건너는 그를 바라보며 솔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으쓱거리며 멀어져가는 인퀴지터의 어깨를 보며 엘프마법사는 예정에없던 휴식을 마치기로 한다.

확실히,  번들거리는 양촛빛으론 모두 비슷한 노란색으로 보일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지않으면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이 어찌 그 뿐만이겠는가. 

내내 담요를 끌며 방안을 배회하던 그의 왼팔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솔라스는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때가 당도하기 전까지 갈라지는 벽을 메꾸어 가릴 수 있는 방법은 많겠으나 

결국 허물어지고 말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저 붓을 들어 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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